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이 시작됐다.
이번 국빈방문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한·프랑스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더욱 발전시키고, 경제·안보뿐 아니라 AI와 문화콘텐츠 등 미래 산업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번 방문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일정이 있다.
바로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영상 정상회의 ‘뤼미에르 서밋(Lumière Summit)’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뤼미에르 서밋에 공동의장으로 참석한다.
세계 영화와 영상산업의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적 무대에 한국 대통령이 공동의장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크다.
그만큼 K-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단순히 K-콘텐츠의 성공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K-콘텐츠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지금, 한국의 작은 제작자들은 과연 살아남고 있는가?”
뤼미에르 서밋이 중요한 이유
뤼미에르 서밋은 단순한 영화 관련 행사가 아니다.
영화와 영상산업이 OTT, 인공지능,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영화와 영상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적인 논의의 장이다.
과거 영상산업의 중심은 극장과 방송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등장했고, 유튜브와 숏폼 플랫폼이 콘텐츠 소비 방식을 바꾸었다.
생성형 AI는 영상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다.
이제 누구나 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를 넘어, AI를 활용해 영상 제작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다.
OTT의 성장이 모든 제작자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OTT의 성장은 분명 영상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방송사나 영화사의 선택을 받아야만 대중에게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OTT와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콘텐츠 유통의 문이 넓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이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제작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제작사와 글로벌 플랫폼이 중심이 되는 산업에서는 자본과 유명 IP, 스타 배우를 확보한 기업이 더욱 유리해진다.
반면 작은 제작사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청년 창작자와 신인 감독도 마찬가지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작비가 부족하다.
작품을 완성해도 이를 안정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하다.
작품이 공개되더라도 다음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얻기 어렵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만든 작품을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K-콘텐츠의 진짜 경쟁력은 작은 창작자에게 있다
우리는 K-콘텐츠를 이야기할 때 글로벌 OTT와 대형 제작사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K-콘텐츠의 경쟁력이 몇 개의 대형 제작사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작가와 감독, 배우, 촬영 스태프, 편집자, 음악가, 프로듀서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창작자들이 만들어온 창작 생태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K-콘텐츠가 가능했다.
따라서 작은 제작자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개별 사업자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창작자가 등장하지 않는 산업은 결국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없다.
오늘의 무명 감독이 내일의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작은 웹드라마 제작사가 내일의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와 유통망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제작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동안 콘텐츠산업 정책은 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되어 왔다.
제작비 지원, 영화제 지원, 교육사업, 장비 지원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한 단계 더 확장해야 한다.
“만든 콘텐츠를 어떻게 시장과 연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특히 소규모 제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제작비가 아니다.
1. 소규모 제작자를 위한 플랫폼
대형 OTT와 경쟁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독립영화, 웹드라마, 숏폼, 대학생 작품, 신인 감독 작품, 지역 콘텐츠 등 기존 대형 플랫폼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운 콘텐츠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작은 제작자가 작품을 올리고, 관객이 작품을 발견하고, 제작자가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2. 지역 콘텐츠를 위한 유통망
지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지역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충남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서울에서도 볼 수 있고, 부산에서도 볼 수 있으며, 해외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영상산업의 핵심은 단순히 촬영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3. 신인 창작자를 위한 첫 번째 관객
신인 감독에게 처음부터 수십만 명의 관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작품을 처음 봐주는 100명, 1,000명, 1만 명의 관객이 필요하다.
그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창작자는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자가 성장한다.
4. 콘텐츠가 다음 콘텐츠를 만드는 구조
지원금만으로 콘텐츠산업을 지속할 수는 없다.
하나의 작품이 관객을 만나고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이 다시 다음 작품의 제작비가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한 번 지원하고 끝나는 산업’이 아니라 ‘작품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지역 영상산업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영상산업의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 제작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자본과 장비,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영상 제작의 진입장벽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이것은 지역과 청년 창작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창작자를 발굴하고,
교육하고,
작품을 제작하고,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고,
다시 그 수익으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 영상산업은 단순히 “지역에서 영화를 찍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창작자 발굴 → 제작 → 유통 → 수익 → 재투자
이 과정 전체를 지역 안에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뤼미에르 서밋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과 뤼미에르 서밋 참석은 한국 콘텐츠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세계가 K-콘텐츠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과 국내 콘텐츠산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몇 개의 글로벌 히트작을 만드는 산업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작은 창작자가 계속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으로 발전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대형 OTT만 바라보는 콘텐츠 정책을 넘어야 한다
대형 OTT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은 한국 콘텐츠산업의 중요한 파트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의 가장 아래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소규모 제작사, 독립 창작자, 청년 창작자, 지역 제작자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시장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작은 제작자가 작은 비용으로 작품을 만들고, 자신의 관객을 만나고, 그 수익으로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이것이 K-콘텐츠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새로운 산업정책이 될 수 있다.
K-콘텐츠의 다음 10년은 작은 창작자에게 달려 있다
뤼미에르 서밋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극장산업의 변화.
OTT의 성장.
AI의 등장.
제작비 상승.
플랫폼 집중.
이 모든 변화는 기존 영상산업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산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창작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태계의 출발점은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라 작은 제작자일 수 있다.
오늘의 무명 감독이 내일의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의 작은 웹드라마 제작자가 내일의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수익으로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K-콘텐츠의 진짜 경쟁력은 글로벌 플랫폼의 규모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자가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생태계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과 뤼미에르 서밋 참석을 바라보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세계가 K-콘텐츠를 주목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작 한국의 작은 창작자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한국 영상산업의 10년을 결정할 것이다.